'동양인 유전자'비밀 찾아나선 美 연구자들 "한민족은 유전자 순수함 지켰다"

집단 유전학계의 대표적인 연구자인 조지프 터윌리거 박사(37.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존 블랑제로 박사(45.사우스웨스트연구소 연구원)가 생명 공학 벤처 기업 마크로젠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각각 한국인과 네팔인을 대상으로 가계도를 조사하며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는지를 연구하는 '집단 유전학'(Population Genetics) 연구자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게놈 유전학이 'DNA'라는 미시적(micro)인 세계에 집중한다면 집단 유전학은 거시적(macro)인 관점에서 유전 현상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학의 창시자 멘델이 강낭콩 수를 세어가며 통계를 냈던 방식이 바로 집단 유전학과 상통한다.
터윌리거 박사는 집단 유전학을 연구하면서 한민족(韓民族)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됐다.

2000년 카자흐스탄의 알마타 지방과 우스토비아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고려인' 수백 명을 대상으로 생김새, 질환 증세를 기록하고 혈액을 채취했다.

채취한 혈액은 현재 컬럼비아 의대 실험실에서 분석 중이다.
그의 관심은 전 세계의 한민족으로 확대됐다.

중국 옌볜의 조선족, 스웨덴의 한국인 입양아,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유전 형질을 연구하는 '한국인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같은 유전 인자를 가졌지만 환경에 따라 어떤 질병이 더 많은지를 알아 보면 질환 유전자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찾기 위해 핀란드나 그린란드도 찾아 헤맸으나 한민족만큼 유전자가 순수하게 보존된 사람들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블랑제로 박사는 네팔인을 대상으로 기생충 감염이 잘 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그는 수 년 동안 네팔에 머물며 한 마을에서 9대 2,000명의 가계도를 조사했다.

그들의 신체 특징과 병명을 꼼꼼히 기록하던 중 어떤 가족은 기생충 감염이 잘 되는데 다른 가족은 잘 되지 않는 특징을 발견했다.

 이들의 혈액을 분석하고 통계 처리를 한 결과 사람의 1번 크로모좀과 13번 크로모좀에 기생충 감염이 잘 되는 유전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지난해 미 학술원 잡지(PNAS)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연구를 위해 '고립된 인구 집단'을 찾아 다녀서일까? 아니면 원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서일까? 두 사람은 모두 소수 민족에 흥미를 갖고 있다.
터윌리거 박사는 대학원 재학 시절 한국인 학생과 같은 방을 쓰면서 한국을 알게 되어 3년 간 한국어를 배웠다.

지금도 한국어로 간단한 의사 소통은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인들은 고유한 민족성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목표 지향적으로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집단 이주 역사를 보면 슬픈 이야기들이 참 많다."고 했다.

블랑제로 박사도 브라질인, 텍사스주의 멕시코계 미국인, 아메리칸 인디언을 포함해 다양한 민족들을 대상으로 유전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 과학자들과 함께 '몽골리안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는 동양인의 근간이 되는 몽골인들의 유전자 변이 및 질병 연관성을 연구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지난해 1월 마크로젠이 몽골 정부와 공동 연구 협약을 맺은 바 있다.

블랑제로 박사는 "동양인들의 유전 형질을 연구하게 되면 동양인에게서 특이한 심장병, 당뇨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에 도착해 피곤한 몸으로도 모든 질문에 즐겁게 대답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무척 즐기고 있다.

터윌리거 박사는 학부 시절 관현악기 '튜바'를 부는 음악학도였으며 블랑제로 박사는 인류학, 고고학에 관심을 가져 3개 분야를 두루 섭렵한 이채로운 경력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현대 생물학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개체를 탐구하던 생물학이 작은 세포 연구로,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DNA 연구로 스케일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터윌리거 박사는 "물론 DNA에 담긴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너무 좁은 영역에만 몰입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블랑제로 박사도 "앞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HPG)에 의해 인간의 모든 DNA 정보가 분석된다면 이들 유전 물질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필수적으로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 이은정 기자(ejung@kyunghyang.com) / 2003. 1. 24(목),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