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느덧 나이들은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져서 세월의 무상함과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결혼날자를 잡아놓은 큰애는 이번 추석이 남다르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고, 대위진급을 앞두고 교육을 받고있는 둘째는 자기도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맛장구를 첬다.

큰애는 키우던 강아지까지 데려와서는 가뜩이나 비염이 심한 나를 괴롭혔다.

몇년 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들었던지 들여놓은 강아지라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엄마가 거의 매일 딸아이를 찾아가서 같이 부대끼기를 몇달이나 하고나서야 아이는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때 나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하고 그냥 침묵으로 대신 했을 뿐이었다.

3일을 부대끼며 소란스럽게 보내고 각자 자신의 일터로 가는데 둘째가 서류뭉치를 건넷다.

아빠. 이거 ㅇ라가 저에게 보낸 편지인데 좀 안전하게 버려주세요.

그래 알았다.

ㅇ라는 아들이 먼 타향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다.

몸이 좀 약하긴했어도 영성적으로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심성고운 아이여서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1년전인가 헤어졌다고 하는 말을 얼핏 들었다.

딸아이가 받은 상처를 아들이 되돌려주는건가 싶어서 순간 아찔하였다.

나는 아이들을 가급적 노터치로 키우기에 주로 보고만 받을 뿐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을 안하는데 이때는 한마디 한거같다.

ㅇ라 괜찮은 아이같던데 좀더 사귀지 그랬냐? 앞으로는 여자를 만나거든 결혼을 전제로 하고 만나거라.

아들은 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은 하였지만 어물쩍 넘어간거같다.

지네엄마를 닮아서 사람 사귀는 일도 쿨하고 헤어지면 그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연예시절 내가 보낸 그 많은 편지도 아내는 이렇게 버렸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가고 피곤이 몰려와 한숨자고 일어났더니 새벽2시다.

문득 둘째가 건네준 서류뭉치가 생각나서 펼처보았다.

같이찍은 사진하며 ㅇ라가 보낸 편지들이 한웅쿰 쏟아져나왔다.

순간 그 아이의 마음이 전해와 울컥하였다.

우리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학교다니거나 학사장교로 가 있는동안 외롭고 힘들었을 때의 편지들이었다.

그럼에도 아들은 빨리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약간 애매한 이유로 ㅇ라와 헤어졌다.

미안하다. 내가 대신 사과하마, 얼마나 많이아팟을까.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라. 너가 며느리가 되어 왔다면 좋은 시아버지가 되었을텐데 안타깝구나. 

사랑한다. 너의 영혼을 진심으로.

2018.9.26.수요일.